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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박완서의 문학과 가톨릭
배부일 : 보도언론 : 작성자 : 최곤 조회수 : 4230

소설가 박완서씨 대구가톨릭대 특강

 

“문학에는 현실을 뛰어넘는 꿈이 있다”

 

 

 

   “문학은, 이야기라는 것은 구질구질한 현실을 뛰어넘을 수 있는 꿈을 갖게 하는 힘을 갖고 있습니다.”

올해 문단 데뷔 40주년을 맞은 소설가 박완서씨(80)가 29일 대구가톨릭대학교(총장 소병욱)에서 ‘나는 왜 작가이고, 가톨릭신자인가’라는 주제로 특강을 했다.

 

   박씨는 “저는 어떻게 보면 작가로 태어났고 어려서부터 작가로 길러졌다”며 “책을 많이 읽고 문학을 정말 사랑했던 어머니의 영향으로 작가의 길을 걸을 수 있었다. 남편을 일찍 잃은 어머니는 보다 나은 삶에 대한 꿈이 있었고 딸을 통해 그 꿈을 실현하고자 했다”며 문학애호가인 어머니의 교육열이 자신을 작가로 만든 원천이라고 설명했다.

 

   박씨는 1930년대 개성에서도 떨어진 벽촌에서 서울로 이사와 초등학교를 다녔고, 한국전쟁 중 빨갱이로 몰렸다가 반동으로 몰렸다를 되풀이했던 불행한 가족사를 이야기하며 자신의 문학은 6·25에서 싹이 텄다고 설명했다. 이 당시의 경험은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와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등에 생생히 나타난다.

 

   그는 “한국전쟁 당시 이데올로기의 갈등과 혼란 속에서 인간 이하의 수모를 준 사람들(군대와 이념단체)을 절대 잊지 않고 증언하기 위해 언젠가 소설을 쓰겠다고 다짐했다”며 “그 어려웠던 시기에 저를 지탱시켜준 게 왜 하필 문학이었을까 생각해보니 ‘이야기의 힘’을 믿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을 ‘이야기꾼’이라 했으며 이야기꾼은 소설가를 폄하하는 말이 아니고, 이야기꾼으로 불리는 데 자부심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박씨는 “그러나 그 당시 생각했던 문학은 ‘복수로서의 문학’이었고, 증오심만으로는 글이 안 써지더라”고 회고했다.

 

   그는 주부로서 평범한 삶을 살다가 40세인 1970년에 소설 ‘나목’으로 문단에 데뷔해 인기작가의 반열에 올랐다. ‘나목’은 한국전쟁 당시 미군부대 PX에서 함께 근무하며 알게 된 화가 박수근의 예술혼을 표현한 작품이다.

 

   박씨는 ‘왜 가톨릭신자인가’라는 물음에 대해 자신의 가족이야기를 들려줬다. 가톨릭신자로서 아무 모자람 없이 행복하게 살던 1988년 남편과 아들을 한 해에 모두 잃었고, 상실감과 절망 속에서 아무 것도 먹지 않고 하느님만 원망하던 어느 순간 식욕이 갑자기 일었는데, 밥을 먹고 나서 하느님의 말씀은 ‘침묵과 밥’이라는 것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그는 또 “죽을 것만 같았던 그 상황에서 우연히 김수환 추기경의 ‘밥이 되어라’라는 문구를 보고, 내가 간절히 하느님께 바라던 해답이 결국 ‘밥’이었으며, ‘밥’은 생명이요, 진리라는 것을 알았다”고 밝혔다.

 

[보도기사 바로보기]

 

CBS노컷뉴스

 

대구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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