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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배님 귀하(2신)
작성일 : 2009/03/08 작성자 : 심지훈 조회수 : 2868

원래 계획에 없던 겁니다. '후배님 귀하(2신)'은. 바빴고, 바쁩니다. 매일 새벽 5시에 일어나, 전국뉴스를 체크하고, 7시에 집을 나서 경찰서를 돌면 9시가 가까워 옵니다. 그러면 사건사고와 함께 오늘 쓸 기사를 보고합니다. 

 

일과는 실제 이때부터 시작합니다. 나는 데이타 분석기사를 즐겨 씁니다. 대구 10대 범죄자는 몇 명인가. 미성년 성폭행범 추이는 어떤가. 노인일자리사업이 늘었다는 데 실태는 어떤가.-같은 자료를 토대로 분석기사를 쓰는 걸 좋아합니다. 

 

이런 기사를 아이템 기사라고 부릅니다. 1차로 기자 스스로가 판단해 대구경북 독자에게 알려줘야 할 것을 정합니다. 보고된 아이템은 반드시 기사로 만들어 내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습니다. 이걸 이유를 막론하고 오후 5시까지 기사화시켜야 합니다.

 

기사보고 후에는 미친 듯이 전화를 돌려댑니다. 그리고 기다립니다. 기다리는 동안 사람을 만나러 다닙니다. 다음 취재를 준비하는 겁니다. 기자는 사람 만나는 게 일입니다. 만나 이야기하다 보면 뜻하지 않게 기삿감이 물립니다. 그걸 또 그날 쳐 낼 수 있으면, 보고를 하고 기사화합니다.

 

대개 오후 3시부터 자판을 두들깁니다. 자료가 안 들어오면 독촉을 하고, 그러는 사이 기사 '마인드맵'을 합니다. 기사를 어떻게 이끌어갈 지 구상하는 겁니다. 어떤 분석을 담아내고, 독자에게 무엇을 보여줄지 고민하는 겁니다. 머릿속으로 정리가 되면 곧바로 '기사입력기'를 열어 칩니다.

 

기자는 속도전에 능수능란해야 합니다. 민첩하고, 재발라야 하는 이유입니다. 개인적으로 기자는 성격 급한 사람이 잘 할 수 있다고 봅니다.(내가 그런 경우입니다. 이왕 할 일이면 빨리빨리 하고 말아야 하는 게 기자 생활하는 데 큰 도움이 됩니다.)

 

기사는 중요한 순서대로 쳐냅니다. 아이템 기사를 쳐내고, 보도자료 기사를 쳐냅니다. 얼추 2시간 쳐내면, 뒷목이 뻐근합니다. 어떨 때는 눈이 아릴 때도 있습니다. 그렇게 미친 듯이 기사를 쳐내고, 송고하면 공식적인 하루 일과가 끝납니다. 

 

5시 이후부터는 또 사람을 만납니다. 5년전만 해도 술자리가 많았습니다. 하지만 나는 술 대신 차를 마십니다. 차를 마시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눕니다. 나의 경우 밤 12시까지 사람을 만나러 다닙니다. 차는 시간을 잊게하는 마력을 갖고 있습니다. 

 

4명만 모여도 4시간은 훌쩍 갑니다. 그냥 세상이야기를 하는겁니다. 나는 그 속에서 기삿감을 낚아챕니다. 다음날 아침, 어떻게 요리할 지를 구상하고, 기본적인 취재를 한 뒤, 9시쯤 선배에게 보고합니다. 물론 이 생활을 지속할 순 없습니다. 어떤 날은 마감 후 곧바로 집으로 와 숙면을 취합니다. 안 그러면 한 주를, 한 달을 버텨낼 재간이 없습니다. 이런 생활 탓에 기자를 '하루살이'에 비유합니다.

 

종합하면, 기자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니라는 것이고, 바지런해야 잘 할 수 있다는 겁니다. 하루에 4~5시간정도 자고, 매일 스트레스 받으면서 글을 쓰는 건 정말이지 즐기지 않으면 못하는 일입니다.(어느 일이나 마찬가지겠지만요.) 하지만 즐기면 이게 제법 매력적인 직업입니다. 자신의 한계를 시험해 볼 수 있는 직업입니다.

 

나는 마흔 살, 앞으로 딱 9년을 봅니다. 그때까지는 미친 듯이 뛰어 볼 요량입니다. 마흔 이후로는 지금의 내 열정을 나도 자신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때쯤이면 나는 '퇴물'이 될 겁니다. 10년 뒤엔, 지금 내 눈에 무능해 보이고, 무책임한 사람들 속에, 후배들이 나를 포함시킬지도 모른다는 생각때문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보수화가 됩니다. 현실에 안주하려는 본성을 지녔습니다. 당장에 내 생활이 편하면 그 본성이 더 짙게 나타나고, 나이가 들면 새것을 받아들이기 보다, 헌것을 지키려는 마음이 더 커지는 것 같습니다. 그게 우리보다 몇 십년은 더 산 선배들에게서 읽히는 보편적 현상인 것 같습니다.

 

그것에서 '나는 그들과 달라'라고 단정하긴 어려운 것 같습니다. 역설적이게도 그 때문에 지금 미친 듯이 살아 보는 겁니다. 내가 또한번 속내를 보이면서 전하고자 하는 건 둘입니다. 하나는 열심히 살아보시라는 겁니다. 사람은 누구나 깜냥대로 살아갑니다. 깜냥은 제 분수껏 산다는 겁니다. 분수는 능력의 다름말 아니고, 능력은 개발하는 겁니다. 결국 깜냥만 뛰어넘을 수 있다면, 누구나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다는 말입니다.

 

둘은 '강직하고 정직하시라'는 겁니다. 능력은 노력하면 일취월장할 수 있으나, 강직과 정직은 인간본성이 어느 것보다 강하게 지배하는 영역이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근본이 졸렬한 사람은, 아무리 능력이 있어도 세상을 온전히 지배할 수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근본이 천박한 사람은, 제 재주를 엄한 데 부리게 돼 있습니다.

 

어른들이 아직도 상놈과 양반을 구분하는 건 나름의 합당한 이유가 있는 겁니다. 이 글을 읽는 사람은 당신의 본성이 어떤지 곰곰이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졌으면 합니다. 자가진단이 끝나면 올바른 인격을 형성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누가 뭐래도 '나를 가장 잘 아는 건 나 자신'이기 때문입니다.

 

후배님들 댓글이 깡총해 좋았고, 몇 개는 인상깊었습니다. 건승하십시오.

 

 

 

 

댓글 작성
댓글 총 3개
김선영 저마다의 영역에서 발로뛰는 대가대인!멋있네요~^^ 2009/03/09
심범수 좋은 글 굉장히 감사 합니다. 보아하니 학교 발전에 상당한 관심이 많으 신것 같은데,, 이메일로 잠시 몇가지 문의 해봐도 괜찬겠습니까?? 2009/03/09
이기창 너 가브리엘아, 그리하여 밝게 되리니 말하셨다 아버지 2009/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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