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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도서관은.
누구 마음을 상하게 하는 것도 참 시큰하게 아픈 일이고, 좀 의젓한 척 하면서 잘 안 싸우려 했는데, 종일 신경 쓰이는
내용에 대해서 좀 까칠하게 굴겠다. 먼저 학교와 도서관 측에 좀 미안하다.
도서관에 뜬 공지사항은 이러한데,
[도서관 좌석을 공평하고 투명하게 이용하는 근간이 되기 위해서 출입 연계 좌석 배정 시스템을 운영하는데 좌석 독점을 위한 일부 학우들의 편법으로 좌석 이용 기회 부족에 의한 민원이 제기 되었고, 도서관 측은 지속적은 계도 활동을 펼쳤으나 그렇게 되지 않아 강제적 재제 조치를 마련하였고 이렇게 공지한다]
재미도 없고 감동도 없고, 내용도 없는 경고성 어투인데, 혹시 뭔지 몰라도 도 서관 문 앞에 있는, 그러니까 내가 잘 안 찍고
다녀서 ‘좌석 독점을 위한 일부 학우들의 편법이 되버린’ 그 것 같다. 구체적으로 첨단의 ‘출입 연계 좌석 배정 시스템’이란 뭘 말하는 걸까.
이 거창하고 세련된 이름은 아마 내가 입학할 때부터 차차 바꿔나가겠다고 한, 그러니까 새로 개원한 대구 가톨릭 대학교 부설 유치원에도 아이들
성장 발육을 위해서 쓰지 않을 열람실의 작은 나무 의자에, 번호 딱지 붙여놓고 1층에 있는 단말기로 빌리고, 반납하는 장치인 것 같다. 그리고
이 ‘출입 연계 좌석 배정 시스템’의 실질적인 효과는 여러 협상 카드로 활용될 때 진가를 발휘한다. 책을 늦게 반납하면 일정기간 정지 - 모든
좌석이 지정된 상태에서 실질적으로 도서관을 사용하지 못하게 만드는 조치 - 실내에서 담배 피워도 몇 달 정지, 이 ‘출입 연계 좌석 배정
시스템’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해도 며칠 정지 시킨다.
이 장치의 긍정적인 효과란 시험기간, 그러니까 어떤 일정 단기 기간내에 급속히 몰리는 학생들이 매번 자리 부족을 호소하고, 그
것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상당히 공을 들인 표시가 난다. 그밖에 유동 인력을 파악하기 수월하고 이를 데이터 베이스화 시킬 수 있는 행정의
편의를 도모할 것이다.
그런데 이 장치의 실질적인 효과에 대해서 의구하다. 개인적으로 매일 8시 30분에 출근해서, 오후
10시 30분에 퇴근하는, 그러니까 어떤 학교 직원분들보다도 조금 더 학교에 머무는 나로선 공지사항에 수록된 민원 재청에 대해서 잘 이해 되지
않는다. 평상시에 민원이 제기 될 만큼 좌석이 부족한 것을 본 적이 없어서 인데, 앞서 말한 제한을 위한 제한의 장치는 아니기를 바란다.
사실 오랜만에 학교에 와서 도서관 입구에 뭐가 있는데, 학교 내규에 따라 운영되는 장치이니 선호를 차치하고 최대한 지키려
노력한다. 그런데 사실 그 자체가 불만이다.
출입 시스템이라는 게, 학교 정문에 있는 게이트 같은
역할일까. 그러니까 과속 하는 차들을 한 번 거르거나, 입출입하는 차량들을 체계적으로 정리해서 유동량을 파악을 하는 것 같은데, 그러면 도서관에
뛰어 다니는 학생들에게 경고하는 장치이거나 후자의 행정 편의를 위한 장치 둘 중에 하나 일 것이다.
물론 무분별한 외부인
출입을 막아서 도난 사건을 방지하자는 목적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도서관이란 애초에 사람을 가려 받는 그런 턱이 높은 곳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일부 발생하는 도난 사건을 명목으로 cctv 찍힌 모든 사람들을 예비 범죄자로 분류 하는 건 아닐까 심히 염려 된다. 사실 감시카메라를 믿고서
개인 물품을 무분별히 방치하는 행위는 누군가를 범죄자로 만들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더 비문화적이다. 개인이 잘 챙기는 게 우선 인데, 규칙과
감시 수단으로 스스로를 제한해야만 하는 걸까.
이제부터 말 할 심각한 불만 사항이란 개인의 사적인 정보가 지나치게 노출되고 있다는 점이다. 학교에서 컴퓨터를
사용하려면 적어 넣는 주민 번호가 몇 번이고, 마치 직장에서 출퇴근 시간을 찍어 넣듯, 언제 도서관을 출입하고, 어느 층 어느 자리를 예약해서,
몇 시간 동안 있었으며, 이에 비추어 어떤 생활 습관을 가지고 있는지, 또 즐겨 보는 영화는 어떤 것이고, 심지어 약간의 노력만 한다면 컴퓨터에
기록된 어떤 사이트에 들어가고 어떤 작업을 하는 지도 세세히 알 수 있다. 마치 조지 오웰이 예언한 1985의 세상이 남 얘기 같지 않다.
컴퓨터실 15번 자리에 즐겨 앉는 내게 누군지 모르는 누군가 어깨에 덥썩 손을 올리고 ‘전군 요즘 중남미 문화 성적이 떨어지는데, 전 시간에는
왜 지각했나. 자영업 하는 아버지는 잘 계신가?’ 하고 묻지 않을까 뒤통수가 뜨끈해 진다. 좀 진지하게 말하자면 인권위에 재소하면 권고 판정이
내려질만한 아주 예민한 사항이다.
다시 말해 내 개인 정보가 어떤 기준으로 수집되고 있으며, 어느 기간
동안 보관되고, 어떤 경로로 사용되는지, 그리고 이런 정보 수집 자체가 개개인의 동의를 얻은 합법적 절차에 의한 것인지 의아하다. 그냥 남들도
다른 학교도 다 하니까 그러는 건 아니겠지.
우리들의 인권은 있으나 마나한 것일까. 이 축적된 데이터 베이스를 통해 아무개는
주당 도서관을 몇 시간 이용하고, 아무개는 학교에 다니면서 도서관 한 번 출입하지 않았다는 정보로 노출되지 않을지 걱정이다.
아는 척 하려는 건 아닌데 미셸 푸코가 쓴 ‘감시와 처벌’ 가운데 판옵티콘 - 원형감옥 - 이라는 개념이 있다. 일망 감시장치로 만들어진 원형감옥은, 중앙의 감시자가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지 않으면서 모든 죄수를 감시한다. 바로 자기 검열을 통해 죄수들 스스로를 감시하게 만드는데, 이 감시자와 죄수들의 관계는 감옥 밖 사회에서도 권력자와 시민들 사이에도 동일한 구조를 형성한다. 세밀히 규제되고 기록되는 과정을 통해 규율에 길들여지고 순응하게 만드는 것이다. 군대나 공장의 엄격한 규율에 군인과 노동자들이 예속화되는 현상과 같다. 산술 평균적으로 우리 젊음이들의 대게가 수년동안 복무하는 군조직이 무구한 역사 동안 왜 인내의 배양과 자기 단련 말고는 다른 역할을 하지 못했을까. 왜 긍정적인 창조의 장소가 되지 못했을까. 그렇다면 감옥은 왜, 그 모양 그 꼴이고, 그렇다면 대학교 마저 왜?
기껏 힘들여 만들어 놓은 장치, 떼 자는 것도 아니고, 그렇게 해서도 안된다. 그런데 이런 얘기는 나 아니면 잘 안 할 것 같아서 길게 썼다. 도서관 관계자도 좋고, 학교 관계자도 좋고, 내 말이 마음에 안 드는 사람도 좋고, 헛소리 하지 말라는 사람도 좋고, 아무나 좋다. 편하게 댓글을 달아 주셔서 화끈하게, 심도있게 좀 이야기 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