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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 의사 딸 효성여대 교수로 재직
배부일 : 보도언론 : 작성자 : 최곤 조회수 : 6942

안중근 의사의 장녀 안현생 여사


1953∼1956년 효성여대 교수 재직

 

대구가톨릭대 '사령원부' 최초 공개


 


   안중근 의사 순국 100주년(순국일 1910년 3월26일)을 맞아 안 의사의 사상과 삶, 후손에 대한 국민의 관심이 고조되고 있는 가운데 그의 딸 안현생 여사(1902∼1960)가 대구가톨릭대학교의 전신인 효성여자대학 교수로 재직한 기록이 최초로 발견됐다.

   대구가톨릭대는 25일 "안중근 의사의 딸 안현생 여사가 1953년부터 1956년까지 3년간 문학과(불문학 전공) 교수로 재직한 '사령원부(辭令原簿)'를 발견했다"고 밝혔다.

   사령원부에는 펜으로 쓴 '4286년 2월18일(양력 1953년 4월1일) 敎授에 任함 安賢生'이라는 발령사항이 자세히 기록돼 있다. 안 여사가 소속된 문학과는 국문과, 영문과, 불문과 등 전공별로 분리돼 있었고, 시인 조지훈 선생과 구상 선생이 함께 재직한 것으로 나타나 있다. 같은 해 조지훈 선생은 전임강사로, 구상 선생은 부교수에 임명된 것으로 적혀 있다.

   안 여사는 그 후 3년 뒤인 1956년 3월31일자로 스스로 교수직을 그만두었다. 사령원부에는 '願에 依하여 本職을 免함'이라는 기록이 남아 있다.

   안 여사가 교수로 재직한 기록은 1992년 발간한 '효성여자대학교 40년사'에서도 확인됐다. 전직교수 명단 여섯 번째에 안 여사는 불문학 전공으로 1956년 3월31일 퇴직한 것으로 나타나 있다.

   효성여자대학은, 천주교 대구대교구가 1914년 영남 최초의 대학교육기관으로 개교했던 성 유스티노 신학교가 일제의 강압으로 1945년 폐교된 뒤 1952년 효성여자초급대학으로 설립인가를 받아  1953년 문학과(40명), 음악학과(40명), 가정학과(40명), 약학과(40명) 등 4개 학과를 설치했다. 안 여사는 효성여대 초창기 대구 대명동에서 여대생을 가르친 50대 교수로서 대구와의 인연을 만든 셈이다.

   이같은 사실은 '순국 100주년 안중근' 특별전을 열고 있는 국립대구박물관의 이내옥 관장이 지난 22일 대구가톨릭대를 방문해 사령원부를 보면서 확인됐다. 이 관장은 "안 여사가 대구가톨릭대 교수로 재직했다는 자료를 이렇게 눈으로 확인하게 돼 참 뿌듯하다"고 말했다.

   소병욱 대구가톨릭대 총장도 "온 국민이 존경하는 안중근 의사의 가족이 대구에서 생활했으며, 본교에서 교수로 재직한 사실이 확인돼 긍지를 느낀다"고 말했다.

   안 의사의 2남1녀 중 장녀인 안 여사는 8세 때 아버지를 잃고, 프랑스인 신부의 보호를 받으며 살다 13세 때 일제의 눈을 피해 제정 러시아로 망명했다. 16세 때 상해 프랑스 조계지(주로 개항장開港場에 외국인이 자유로이 통상 거주하며 치외법권을 누릴 수 있도록 설정한 구역)에서 불문학과 미술을 공부했다. 이후 서울로 이주했다가 한국전쟁을 당해 대구로 피난왔으며 효성여대에서 교수로 재직했던 것이다. 이후 서울로 옮겨 생활하던 중 1960년 북아현동에서 고혈압으로 세상을 떠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편 안중근 의사는 대구에서 시작한 국채보상운동의 관서지부장(평양)을 맡아 활동했고, 1899년 가톨릭 근대교육기관인 대구 해성재(현 효성초등학교)에 초빙돼 강연하는 등 대구와의 특별한 인연이 있어서 이번 안 여사의 대구가톨릭대 재직 사실로 인해 대구와의 더 큰 인연이 확인됐다는 큰 의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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