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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과 문을 넘어서] 사무처장 김명현 신부
배부일 : 보도언론 : 작성자 : 비서홍보팀 조회수 : 12040

[2007. 5. 7자 매일신문 3040 광장]

 

담과 문을 넘어서 
 
  
이런저런 일로 농촌에 들르는 경우가 있다. 우리네 농촌, 특히 산자락 끝머리에 위치한 농촌 마을은 평화롭기 그지없다. 이런 모습에 끌리어 마을에 들어서면 구부러진 길과 나지막한 담을 만나게 된다. 길이 구부러진 것은 주어진 땅에 집을 짓고 자연 환경에 맞추어 담을 곡선으로 쌓았기 때문이다.


이 담은 그리 높지 않고 나지막하다. 낮은 담은 집안과 밖을 구분할 수 있게 해주지만 분리시키지는 않는다. 그것은 담이 낮아 이웃에서 무엇을 하는지 다 볼 수 있으며, 옆집을 방문하지 않고서도 마당에서 서로의 안부를 묻고 인사를 나누며, 맛깔진 음식을 나눌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농가의 담은 이웃을 가로막는 벽이 아니라, 인정과 사랑이 넘나드는 곳이다.

 

전통농가에는 문이 없는 경우도 많고 있어도 사립문이다. 이 문마저 낮아서 이웃이 문밖에 있어도 인사를 나눌 수 있다. 농가의 문은 누구나 쉽게 열 수 있다. 이 문은 야생동물이 함부로 인간의 영역을 침범하지 못하게 하기 위한 것이지 사람과 사람을 갈라놓지는 않는다.

 

그래서 이 문은 누군가를 막기 위한 문이 아니라 사람을 위해 열려 있는 문이며, 야생 짐승과 인간의 삶을 구분지어 주는 경계일 뿐이다. 낮은 담과 열려있는 문 덕분에 한 마을에 사는 사람들은 서로의 살림살이를 잘 알고 살갑게 살아가는 풍토가 조성될 수 있었다. 그래서 100여 년 전 우리나라에 온 선교사들은 우리 민족을 가난하지만 참으로 정이 많고, 서로 도울 줄 아는 착한 민족이라는 기록을 남겼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의 집들은 어떤가? 비록 담 허물기를 통해 높은 담이 사라지고 있다지만, 부유한 동네에 가면 어김없이 높은 담과 함께 전자방범장치에다 CCTV까지 설치되어 있다.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는 아파트 단지 역시 담으로 둘러쳐져 있으며, 아파트 입구에는 경비원도 모자라 CCTV까지 출입자들을 감시하고 있다. 이런 아파트를 방문하는 경우 여러 차례의 검문(?)을 받을 수밖에 없다.

 

이런 벽들을 넘어 원하는 집 앞에 서면 쇠로 만든 문이 또다시 앞을 가로막는다. 이 문 앞에 서면 방문자는 다시 어찌할 수 없는 좌절감을 맛본다. 그래서 이 문은 낯선 사람에게 단지 넘을 수 없는 벽일 따름이다. 이 문을 넘으려면 초인종을 눌러야 한다. 초인종이 울리면 집안의 사람은 문에 달린 조그마한 구멍을 통하거나 인터폰의 화면을 통해 누가 왔는지 확인한다.

 

이때의 만남은 얼굴과 얼굴을 마주하는 만남이 아니다. 집안의 사람은 조그마한 구멍을 통해 광학적 상을 볼 따름이다. 이때 방문자는 자신이 감시를 받는다는 느낌을 가지게 된다. 그러기에 이러한 만남은 서먹서먹할 수밖에….

 

오늘날 아파트는 소음을 막는다고 갈수록 더욱 강력한 벽을 쌓고 있다. 이러한 벽 덕분에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방해를 받지 않고 자신들만의 공간을 확보할 수 있다. 하지만 이 벽은 두 집 사이에 소리마저 넘어들 수 없게 됨으로써 서로 격리시킨다.

 

사람들은 삼면이 콘크리트 벽으로 둘러싸여 있는 것이 싫어서인지 이제는 거실의 창을 넓히고 있다. 창이 넓어져 세상의 경치가 거실 안으로 들어오지만 정작 이 넓은 창을 통해 사람과 인정은 들어올 수 없다. 이로 인해 한 아파트 단지에 수백 아니 수천 호가 살고 있지만 정작 이웃사촌은 찾아보기 힘들게 되었다. 아파트의 이러한 모습은 자신만의 성을 쌓고 그 안에 들어앉아 마음의 문을 열지 않는 도시인들의 정신세계를 보여주는 듯하다.

도시 아파트를 다시 농촌 마을로 만들 수는 없다. 하지만 담과 문을 넘나들던 우리 민족들이 지녔던 지혜에서 각박한 도시민의 삶을 극복하는 답을 찾을 수 있다. 아파트는 하드웨어여서 벽을 허물 수 없다면 소프트웨어인 사람들의 정신을 바꿀 수 있지 않을까?

 

자신의 아파트라는 성에서 문을 꼭 걸어 잠그고 나만의 왕국을 만들어갈 것이 아니라, 이웃에 대한 관심과 사랑으로 우리의 마음의 문을 열어야 한다. 이럴 때 생명이 없는 콘크리트 숲이 사랑과 나눔, 섬김과 봉사가 살아있는 생명의 숲이 된다. 이런 도시를 만들기 위해 이웃사촌 만들기 운동이라도 벌이는 것이 어떨까?   

 

김명현(신부·대구가톨릭대 사무처장)

 

 

[보도기사 바로보기]

 

☞ 매일신문

http://www.imaeil.com/sub_news/sub_news_view.php?news_id=19527&yy=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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