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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에게 방학을 돌려주자
몇 일전 업무차 농촌지역에 있는 우리 대학 수련원을 방문했다. 가는 도중 아기자기한 경북북부지역의 경치 덕분에 온 몸과 정신을 청정해지는 듯했다. 그러나 맑은 물이 흐르는 계곡과 개울들이 있었지만 그 풍경이 과거와 같지 않았다.
이 맘 때면 방학을 맞은 아이들이 개울에서 멱을 감고 송사리와 피리를 쫓아야 하는데 정작 개울에서 뛰어노는 아이들을 볼
수가 없었다. 그 대신 다슬기를 줍는 사람들이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었고, 그늘이 있는 물가엔 어른들이 둘러앉아 돼지고기와 술을 마시고
있었다.
제법 큰 마을과 읍 소재지 근처의 개울에서도 아이들을 찾아볼 수 없었다. 방학이 되었지만 아이들은 정작 어디에 갔을까?
궁금해 하는데 마침 버스가 한 대 지나갔다. 그 후 아이들 서너 명이 가방을 메고 작열하는 태양 볕을 받으며 길을 건너고 있었다. 이제야 나는
‘아하, 아이들이 학원에 다녀오는구나!’라며 무릎을 칠 수 있었다.
주위의 아이들을 가만히 살펴보면 아이들은 방학이지만 학기 중보다 더 바쁘게 생활하고 있다. 학기 중에는 학교공부 위주로
학원을 다니고 공부를 하지만, 방학 때는 학기 중보다 더 많은 학원에 다니는 것이 오늘날 우리 아이들의 현실이다. 왜냐면 학기 중에 학과공부
때문에 못 다한 것을 배워야 하기 때문이다.
또 열성적인 부모들은 자기 자녀가 다른 사람보다 뒤쳐져서는 안 된다는 강박관념과 함께 아이들이 어느 정도의 기본을
갖추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자녀가 남만큼은 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부모들은 자기 자녀를 다른 아이들과 비교하고 조금이라도 모자라는 것이
있으면 그것을 채우기 위해 온갖 방법을 동원한다. 그리고 부모들이 생각하는 기본이라는 기준이 너무 높다. 요즈음 열성적인 부모들이 생각하는
기본이 되는 아이는 피아노를 비롯해 악기 하나는 다루고, 또 미술 등 예술적인 취미도 하나 정도는 있어야 하고 태권도, 수영 등의 운동에다가
학과공부는 상층에 속하고, 영어를 비롯해 다른 외국어도 가능한 아이라고 생각한다.
열혈부모들이 제시하는 이런 기준에 비추어보면 악기 하나를 제대로 못 다루는 난 완전히 모자라는 사람이다. 그런데 이런
기준을 채우는 사람이 우리 아이들 중 몇 퍼센트를 차지할까? 열혈부모들이 생각하는 기본을 갖춘 아이는 내가 볼 때 만능 재주꾼 또는 천재이다.
이런 아이들이 그리 흔치 않은데 부모들은 자녀를 학원에 보내면 만능 재주꾼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열성부모들은 방학은 아이들을
만능재주꾼으로 만드는 절호의 기회로 생각하고 아이들을 괜찮다는 여름방학 캠프, 해외어학연수 등에 밀어 넣는다.
그리고 이런 부모들은 방학 때에 아이들이 여유 있게 생활하는 것이 곧 뒤쳐지는 지름길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이들
부모들은 방학 때 자녀교육을 위해 더 많은 신경을 쓴다. 이러다 보니 방학인데도 아이들은 학기 중보다 더 바쁜 나날을 보낼 수밖에.
사실 방학 때에 뒤쳐진 학과목을 공부하고 학기 중에 못한 다양한 활동을 하도록 부모가 배려하는 것은 결코 나쁜 것이라
할 수 없다. 하지만 극성적인 부모들은 자녀를 위한 이러한 배려가 바로 자기만족을 위한 것일 뿐, 아이의 능력이나 의향과는 상관없이 아이들을
학원과 각종 캠프로 내몰고 있다.
그리하여 정신없이 방학을 보냈지만 정작 아이에게 남는 것은 별로 없는 경우가 허다하며, 심지어 아이에게 나쁜 영향을
주는 경우도 발생하고 있다. 어쩌면 태양보다 더 뜨거운 부모들의 교육열 덕분에 아이들은 학원과 캠프의 사슬에 얽매여 있으며, 아이들의 사고와
인성은 부모의 그 뜨거운 열 때문에 가뭄 때의 논바닥마냥 갈라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이제 더 이상 아이들은 부모의 욕망과 자기만족의 도구가 아니다. 아이들은 아이들답게 성장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 방학
때 만이라도 아이들을 공부의 족쇄에서 풀어줄 수는 없을까? 부모들의 욕망과 자기만족을 위해 잃어버린 방학을 아이들에게 돌려줄 수는 없을까?
아이들에게 진정 필요한 것은 학업과 캠프로 가득 찬 방학이 아니라, 또래들과 함께 모여 물장난을 치며 함께 사는 것을 배우는 것이다. 이럴 때
우리 아이들은 따뜻한 인성을 갖춘 사람으로 성장할 것이며, 우리 사회는 서로를 보듬고 배려하는 사회로 발전할 것이다.
김명현(대구가톨릭대 디모테오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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