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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착과 사랑] 사무처장 김명현 신부 기고
배부일 : 보도언론 : 작성자 : 비서홍보팀 조회수 : 8187

[2007. 10. 30자 매일신문 3040 광장]

 

집착과 사랑

 

  캠퍼스에 가을이 익어가고 있다. 아침 안개 사이로 푸르던 느티나무가 빨간색 노란색으로 옷차림을 바꾸었고, 우리 학교 교목인 은행나무도 이에 뒤질세라 샛노란 물감을 뿌려대고 있다. 성모상에서 기숙사로 오르는 길가에 눈꽃을 맞은 듯 하얗게 피어난 억새는 학생들과 탐방객들의 추억 만들기에 일조하고 있다.

 

  이렇게 멋진 가을의 정취를 꾸미는 단풍들은 이른 봄에 그 여린 모습으로 빼족이 모습을 드러내어 불볕 같은 더위와 모진 돌개바람과 싹쓸바람에도 자리를 지켰으나, 쌀쌀한 소슬바람엔 힘없이 떨어지는 모습이 우리의 삶을 반추하게 만든다. 떨어지는 낙엽이 새봄에 새움이 돋아날 자리만 남겨두고 떠나는 모습은 우리에게 집착에서 벗어나 참 사랑으로 살라고 가르치는 듯하다.

 

  수많은 대중가요가 사랑을 노래하고 있고, 모든 종교들이 사랑을 가르치고 있다. 그리고 세상 사람들은 사랑을 끊임없이 갈구하면서도 사랑으로 살아가지 못하고 있다. 한시라도 떨어져선 못살 것 같아 결혼한 부부가 이혼으로 갈라서고, 아이들마저 버리는 가정파괴는 이기적인 집착 때문에 일어난다.

 

  사실 오늘날 많은 부부들이 서로 상대방이 자신의 욕망과 희망을 채워주길 바라며, 이것들을 채워줄 때 상대방이 사랑받을 수 있는 조건을 갖추었기에 사랑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여기엔 부부들의 인격적 성숙이 있을 수 없고, 오직 상대방을 자신의 뜻대로 만들어가려는 집착이 자리 잡고 있기에 파국의 결과를 초래할 수밖에 없다.

 

  또 부모는 자신들의 희망을 이루기 위해 자녀를 고액과외, 조기유학으로 내몰고 기꺼이 기러기 아빠의 삶을 살면서 자식을 진정 사랑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런 것들은 자녀에게 무언가를 해주는 것이 자식에 대한 사랑이라고 생각하는데서 비롯된 것이다.

 

  진정 사랑은 무엇을 해주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인데… 그리고 우리사회에 만연한 성매매는 쾌락에 대한 집착 때문에, 뇌물수수는 권력과 돈에 대한 집착 때문에, 각종 투기는 돈에 대한 집착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 아닐까. 어쩌면 우리 사회에 벌어지고 있는 각종 악행과 범죄가 바로 잘못된 사랑, 과도한 집착에서 벌어지는 것이 아닐까?

 

  흔히들 사랑한다고 하는데 이는 자신이 원하는 상을 만들어 놓고 그 상에 상대방이 맞으면 사랑하고 안 맞으면 사랑하지 않는다. 이것은 사랑이 아니라 집착이다. 이런 집착은 자신이 원하는 대상에게 자신의 생각을 불어넣고 자신이 원하는 모습이 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또한 집착은 대상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투자하고 상대방이 자신에게 절대적인 최고의 가치를 가진 것으로 생각한다. 여기엔 자신이 상대방에 속박될 뿐 아니라 상대방을 자신의 소유로 삼으려는 경향이 있을 수밖에 없다. 이런 관계를 맺는 사람들은 결국 자신의 세계에 갇히게 되어 삶의 활력소인 진정한 자유와 사랑을 잃어버리므로 숨 막히는 삶을 살아가게 된다. 집착을 극복하는 길은 오직 사랑이다.

 

  사랑은 그저 좋아하고 아끼는 감정이 아니다. 진정한 사랑은 상대방의 조건을 따지지 않는다. 상대방이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가졌는가를 따지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의 존엄함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데서 시작된다.

 

  그러기에 사랑은 상대방을 속박하는 것이 아니라 자유를 주는 것이다. 이 자유는 상대방의 성숙을 위한 자유이기에 진정한 사랑은 진리를 따름이 있어야 하고 진리 안에서 다른 사람을 위한 봉사와 존중이 있어야 한다.

 

  여기서 진리란 바로 존재의 질서를 가르치는 말이다. 그러기에 참된 사랑은 존재의 질서를 지키는 것이다. 달리 말해서 사랑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 존재하는 질서와 도리를 지켜가는 데서 출발해 상대방의 자유를 존중하고 상대방의 성숙을 위해 자신을 내어주는 봉사와 희생으로 완성되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의 출발점은 바로 상대방에 대한 집착을 버리는 데 있다.

 

  떨어지는 낙엽이 자신의 자리를 비워 줌으로써 새봄이 오면 그곳에 새움이 솟아나듯이, 사랑은 상대방을 나에게 예속시키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에 대한 나의 욕망을 비워 가야하는 것임을 새삼 깨닫게 된다. 떨어지는 낙엽과 함께 나도 내가 가지고 있던 욕망과 집착을 비워나가야겠다. 그 빈 곳은 결코 나에게 생채기가 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생명과 희망이 터져나오는 새움이 될 것이다.  

 

김명현(신부·대구가톨릭대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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