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fference you are making
[2007. 11. 27자 매일신문 3040 광장]
오늘은 나에게, 내일은 너에게
어느덧 11월도 막바지에 이르렀다. 월초에 온 산하를 붉은빛으로 연연히 물들이던 단풍도 이젠 마지막 잎새마저 떨구었다. 지붕 낮은 농가의 감나무엔 까치밥만 외로이 달려있고 추수가 끝난 들녘은 온통 휑하니 비어있다. 이런 모습의 11월 끝자락엔 봄과 여름의 활기 넘치는 생명력을 찾을 수 없고 가을의 풍요도 느낄 수 없다.
어쩌면 메말라가는 풀들이 만들어내는 회색빛이 쓸쓸함과 죽음을 떠오르게 한다. 자연의 이런 모습과 어울리게 가톨릭교회는 11월을 위령성월로 보내고 있다. 위령성월 동안 사람들은 교회의 전통에 따라 무덤을 방문하고 세상을 떠난 조상들과 친지들뿐 아니라 죽은 모든 이의 영혼을 위하여 기도하며, 죽음에 대해 깊이 묵상한다.
이런 전통에 따라 얼마 전 남산동에 있는 성직자 묘지를 찾았다. 나뒹구는 낙엽이 쓸쓸함을 더해주는 가운데 묘지로 들어서는 나에게 'Hodie mihi, cras tibi'란 라틴어 경구가 유난히 마음에 와 닿았다. '오늘은 나에게, 내일은 너에게'란 뜻이다. 이 말은 세상을 떠난 이들이 오늘은 나의 차례지만 내일은 너의 차례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 사람들은 누구나 죽음과 아무 상관없는 것처럼 생각하고 살아가고 있지만, 사실 우리 앞에 죽음이 놓여있기에 오늘은 내 차례가 아니지만 내일은 내 차례일 수도 있다. 죽는다는 사실은 우리 모두가 알고 있지만, 단지 그 죽음의 때가 언제인지 모르고 있을 뿐임을 깨달으라는 말씀이다.
느린 발걸음으로 묘지를 향하며 또 다른 죽음에 관한 경구가 떠올랐다. 로마 베네토 거리에 있는 까푸친 수도자들의 납골당 마지막 회랑에 쓰여 있는 경구이다. '오늘 나의 모습은 미래의 너의 모습이고, 오늘 너의 모습은 과거의 나의 모습이다.' 맞는 말이다. 지금 앙상한 유골로 남아있는 이들은 과거 우리와 같은 생명을 누렸고, 지금 생명을 누리는 우리도 언젠가 앙상한 유골로 변할 것이다.
채 백 년도 살지 못하는 인생을 영원히 살 것처럼 현실에 매여있는 우리에게 주는 경고의 말이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사람들은 배웠다고, 돈 있다고, 잘났다고, 권력이 있다고 뽐내지만 그저 수십 년, 길어도 백 년 후면 똑 같은 주검으로 변하고 말 것이니 겸손하게 살 것을 일깨워 준다.
이런 저런 생각과 함께 들어선 묘지에는 늦가을의 스산함이 감돌았지만 깨끗하게 정돈된 무덤들 앞엔 묘지를 찾은 이들이 갖다 놓은 꽃들이 놓여있었다. 묘지 곳곳엔 혼자 혹은 서너 명의 사람들이 작은 소리로 먼저 간 이들을 위해 기도하고 있었다.
먼저 떠났지만 잊지 않고 찾아와 기도를 해주니 참으로 감사하고 고마울 다름이다. 짧은 기도 후 발걸음은 자연히 생전에 가깝게 지내던 신부님들의 무덤으로 향했다. 무덤 앞에 서자 그동안 잊고 있었던 그분들의 모습이 떠올랐고, 그분들과 나누었던 삶의 흔적들이 스크린에 비친 짧은 영상처럼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함께 살아오면서 나누었던 삶의 순간에 부족했던 것들에 대한 안타까움과 제대로 이해하지도 사랑하지도 못했던 아쉬움이 온몸을 감쌌다. 그들은 떠나갔지만 삶의 순간에 그들과 나누었던 사랑과 정의 끈이 아직도 내 안에 남아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최근 잘 알고 지내던 지인들이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접하였다. 두 분은 오랜 투병생활 끝에 모질게 물고 늘어지는 암을 이기지 못하여 생명의 끈을 놓았다. 한 분은 세월이 만들어준 고령의 무게를 이기지 못해 유명을 달리했고, 또 한 분은 갑자기 찾아온 죽음 때문에 가족들과 마지막 인사도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죽음 너머 그 무엇이 있기에 돌아올 수 없는 길을 떠나는 분들이 그리도 총총히 떠나는지? 그들의 이런 모습은 남은 자들에게 살아있는 동안 더 사랑하지 못했고, 더 잘해주지 못했고, 더 귀하게 대하지 못했음에 대한 아쉬움과 안타까움으로 눈물 흘리게 만든다.
하지만 죽음 자체에 얽매이지 않고 죽음 너머를 본다면 죽음은 살아있는 사람들에게 또 다른 소중한 가르침을 안겨준다. 죽음 때문에 살아있는 순간의 소중함을, 함께 사는 사람들의 소중함을 더욱 깊이 깨닫게 된다.
그리고 죽음을 통해서 한 사람을 떠나보내지만 남은 자들의 마음과 영혼 안에 남아 있는 사랑 때문에 죽음을 넘어서 영원한 사랑이 있음을 일깨워준다. 결국 죽음은 삶의 소중함과 사랑의 소중함을 우리에게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김명현(신부·대구가톨릭대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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